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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관리자 | 2014.01.14 06:10 | 조회 4224



아주 작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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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리학교 생풍샘 박한배

  

  

봄 햇살의 손길에 꽃망울들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다. 밤새 내린 개미 오줌만큼의 봄비가 그만 진달래 꽃망울을 터뜨리고 만다.”

    

 

한배야! 박한배~”

초등 4학년 남자 아이는 여동생과 라면을 끓여 먹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문을 연다. 담임선생님이다. 온 몸이 얼어붙는다. 고개만 겨우 숙여 인사를 할 뿐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눈으로 선생님만 바라본다.

한배네 집이 여기구나! 그냥 한번 와봤어. 저녁 먹는 구나. 어머니 오시면 이거 전해 주렴. 그래 내일 학교에서 보자.”

아이는 방문을 나서지도 못한 채 선생님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다. 남겨진 흰 봉투를 한 곳에 치우고 말없이 라면을 먹는다. 마음속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선생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은 바로 담임선생님의 가정 방문이었다. 3학년 때까지 기초학습 부진아였다. 학교를 거의 가지 않으니 공부를 잘할 리가 만무했다. 그 때까지 구구단도 못 외었다. 성적은 전 과목이 고르게 이었다. 학교에 가면 그냥 조용히 앉아 있다가 오는 것이 전부였다. 왠지 모르게 한없이 작고 위축된 아이였다.

 

그런데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충격적인(?) 가정 방문 이후 난 이상하게(?) 바뀌었다.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선생님의 말이 모두 믿어졌다.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그대로 순종했다. 공부시간엔 위성안테나처럼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집중했다. 잘 몰라도 발표하겠노라고 손을 들었다. 귀가 열렸다. 처음으로 삼각형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마음이 열렸다. 그 때부터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그라진 마음이 펴졌다.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결국 졸업할 때는 우등상을 받고 졸업하는 아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라는 분이 고마운 분이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학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10년 뒤 난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교대에 들어간 뒤 선생님의 주소를 수소문해서 인사를 드리러 갔다. 가정방문 하신 일을 기억하시냐고 묻자 선생님은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선생님은 그 일을 기억하는 데 한참동안 기억의 여정들을 더듬어 보셔야 했다. ‘아주 작은 일, 기억조차도 희미한 일이라고 하셨다. 나에겐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자 전환점이었는데 아주 작은 일로 기억하시고 계시다는 것이 나에겐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러나 분명 난 선생님의 가정방문으로 그분을 만났다. 선생님이 내 삶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셨다.

 

아주 작은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하교 지도를 하며 아이들이 가는 발길을 따라 5분만 가면 한 아이의 집이 나온다. 퇴근길에 아파서 결석한 아이의 집을 찾아 몇 천원어치 과일을 사다 준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집을 살펴본다. 때로는 아이의 방에 들어가 한번 앉아 본다. 30초의 짧은 축복기도를 한다. 대접해 주는 물을 한잔 마신다. 아이가 쓰는 물건을 만져보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 모든 것에는 아주 작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봄 햇살의 손길에 꽃망울들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다. 밤새 내린 개미 오줌만큼의 봄비가 그만 진달래 꽃망울을 터뜨리고 만다. 가정방문은 몇 방울 떨어지는 봄비와 같다. 아주 작은 노력, 에너지, 그리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아주 작은 사랑이 필요 할 뿐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 그것은 바로 남들은 몰라도 우리 선생님은 나를 알아. 선생님과 난 둘만의 비밀이 있어.’ 라는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짧은 만남, 긴 감동을 주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한 장의 편지, 몇 분의 시간, 몇 칼로리의 열량, 몇 백 원의 돈만 있으면 된다. 꽃망울을 틔우는 것은 몇 방울의 빗물로 충분하다.

 

박태주 선생님, 그 이름을 난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그분의 얼굴도 기억난다. 그분이 세수고 난 뒤 조금은 상기된 그 얼굴도 기억난다. 그분은 나의 선생님이다. 지금 이렇게 내가 선생으로 살아가게 해준 선생님이시다. 내가 그분을 기억하듯이 그분도 나를 기억했다. 교대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소위가 되었노라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내가 그분을 찾았던 그 때, 그분은 매우 놀라셨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난 15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평교사로 평생을 보내시다 6년 전 인천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퇴직을 하셨다. 한동안 연락이 끊어져 뵙지 못했는데, 난 우연히 교단을 떠나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단의 떠나시는 마지막 말씀에 내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아내가 된 내 여자 친구가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참 운명적이다. 아내는 내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그 당시 아내와 난 비밀 연애를 하던 차라 그 선생님이 말씀 하신 제자가 바로 내 남자 친구입니다.’라는 말도 못했다. 그냥 좌불안석이었다.

 

40년이 가까운 교사 생활 끝에 그분이 후배, 동료교사들에게 남긴 말 한마디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작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십시오.” 30년 전 11살의 아이 가슴에 선생님이 들어왔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선생님의 가슴에 그 아이가 들어와 있다.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  <좋은교사>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에서 공동 주최하여 1월 13일부터 서울에서 진행 중인  <학습부진, 학습장애 현장 전문가 과정> 연수에서 사례발표를 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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