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와 돌계단
허유찬
우리 학교는 산속에 있다. 학교 건물 뒤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마을이 있다. 난 매주 그 마을로 간다. 독거노인 돕기 봉사 활동으로 마을의 어르신들을 뵙기 위해서이다. 학교의 뒷문을 나와 걷다 보면 금방 마을에 접어든다. 초록이 무성한 밭도 보이고 검은 그늘막을 씌어 놓은 인삼밭도 보인다. 한쪽에서 들리는 라디오 소리와 한적한 풍경이 조화를 이루어 정겹다. 더 걷다 보면 딸기를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그곳 앞을 지날 때면 쉴새 없이 짖는 개와 지저귀는 참새들이 나를 반긴다.
이 마을의 어르신들은 대부분 60년 내외를 이곳에서 거주하셨다. 그분들은 댁과 마을 회관을 넘나들며 하루를 보내신다. 나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마을의 어르신들께 학교 급식을 가져다 드린다. 하루는 박00 어르신의 댁을 방문했다. 그분의 댁은 다른 주택들에 비해서는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최근에 지은 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가져다 드리고 박00 어르신에게 여쭈었다.
“이 집은 언제 지으셨나요?”
“얼마 안 됐어. 11년 됐나?”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11년은 절반이 넘는 기간이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에서는 11년이 짧게 느껴졌다. 11년이 전이 최근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르신의 인생에서 11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주방의 그릇에는 블루베리가 담겨 있었다. 난 어르신께 여쭈었다.
“블루베리가 있네요. 어디서 구하셨어요?”
“집 앞 나무에서 딴거여. 많이 먹어. 평소에 와서 따먹어도 댜.”
“오, 감사합니다!"
“근디, 좀 실 건데…"
“아니에요. 엄청나게 달고 맛나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달았다. 어르신께서는 블루베리가 왜 시다고 느끼셨을까? 나이가 드셔서 조금만 시어도 신맛을 강하게 느끼시는 것일까? 아니면 작년 블루베리가 더 달아서일까? 블루베리 한 움큼을 손에 쥐었는데도, 어르신은 그릇에 더 담아가라 하셨다. 배불러서 블루베리는 거절했지만, 어르신의 넉넉한 마음만은 간직하고 싶었다.
또 다른 날은 김00 어르신의 댁에 방문했다. 그분의 주택은 박00 어르신의 댁보다 좀 더 오래된 듯했다. 대문에 다다르니 트럭 한 대가 앞에 있었다. 어르신의 아드님이 트럭에서 마당으로 돌을 나르고 계셨다. 나는 대문을 넘어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잡초를 막기 위해 검은 천이 펼쳐져 있었다. 닭장과 꽃이 핀 작은 화분들도 있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계신 어르신께 인사드렸다.
“안녕하세요!! 식사 가져다 드리러 왔어요!!”
“어서 와.”
“저분은 아드님이시죠??”
“맞어.”
오늘의 식사인 치킨 마요 덮밥을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은 마루보다 무릎에서 발 정도 아래에 있었다. 바닥을 살펴보니 죽은 파리와 모기들이 있었다. 어르신께 치워 드린다고 하고 그것들을 휴지로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르신은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했다. 그때는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파리와 모기가 살아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체들이 다 바닥에 있었기에 위생상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시체들이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어르신께는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밥을 옮겨 드리고 난 뒤 주방을 나왔다. 마루에 앉아 계신 어르신의 아드님은 계속 돌을 옮기고 계셨다. 나는 여쭤보았다.
“돌은 왜 옮기시는 건가요?”
“돌계단을 만드는 거여. 대문 앞처럼 집 앞에도 만들고 있어. 어머니 올라오시기 편하라고.”
아드님이 돌계단을 만드시는 것은 어르신께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 드리는 것이리라. 사랑은 보답할 때 더 빛나는 것이니 말이다. 어르신의 아드님을 보며, 나는 과연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늘 사랑을 받기만 하고 드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종종 지친 하루를 보낼 때면, 블루베리를 건네주시던 어르신의 손과 돌계단을 만드시던 아드님의 손이 나를 다독여주는 듯하다. 나의 손도 그분들처럼 누군가를 보듬어주는 손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