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 교육공동체를 꿈꾸다!

관리자 | 2016.12.22 16:12 | 조회 1224



별무리, 교육공동체를 꿈꾸다! 

 

별무리교육연구소 소장 이상찬 

 

 

충청남도의 맨 끝자락 전라도 땅인가 싶은 그곳에 별무리마을이 있다. 2010년부터 서울, 부산, 대전, 천안, 경기, 인천, 등 전국에 흩어져 아이들을 가르치던 공립학교 선생님들 31 가정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해가 지면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마을이어서 별무리마을이다.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별무리공동체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육 공동체를 꿈꾸다. 

 

그는 꿈이 있었다. 기독교적인 신앙이 그의 삶 모든 곳에서 빛을 발할 것이라는 꿈이다. 즉, 그가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아이들과 동료, 나아가 교육의 전 영역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그리고 함께 꿈꾸는 자들을 모았다. 함께 모인 그들은 주 중에 하루를 정하여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현실 속에 구현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였다. 학교를 마치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얘기하였다. 기독교적인 교육의 방향, 펼치고 싶은 교육, 교수법 등등. 그러다 그들은 한계를 보았다. 주 중 하루를 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고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늠해야 할 꿈의 크기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들은 함께 살 집을 짓고 싶었다. 그러면 매일 만나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주말엔 땅을 찾아 나섰다. 경기도 중에서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다는 여주에 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숨에 달려갔다. 땅은 좋은데 입구를 확보할 수 없는 맹지였다. 집을 짓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충주에, 괴산에, 보은에, 제천에 점점 가격을 비교하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의 한 산기슭에서 그의 시선이 멈추었다. 나즈막한 산자락으로 빙 둘러 자리잡은 분지 같은 땅이었다. 앞으론 기존의 마을이 있고 그 너머 뾰족 솟은 필봉이 그림 같았다. 땅의 중간엔 넓고 평평한 공간이 아늑하게 자리잡아 누가 보아도 그 땅은 학교 자리였다.  

 

눈이 보배다. 

 

그가 친구들과 함께 땅을 찾고 있을 무렵 그는 농림부에서 실시하는 ‘이촌’ 장려 사업을 발견했다. 어떻게 그걸 그가 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전체 규모 2,000억을 마련하여 농림부에서 시행하는 사업이었는데, 도시인구가 농촌에 이주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20가구가 이주하면 10억, 30가구가 이주하면 15억, 40가구가 이주하면 20억을 지원하여 택지 개발 및 제반 개발행위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업계획을 검토한 그들은 무슨 보물 지도를 발견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논의하던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교육과정, 교수법, 생활지도 등의 접근과는 차원이 다른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교육 마을’을 이루는 것이었다. 1단지부터 3단지까지 넓은 마을, 한 복판에 마을의 센터가 있고 그곳은 주민들의 문화와 교육적 필요를 채우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기능을 가미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기 위해 최소한 20명의 참여자가 있어야 했다. 논의 끝에 평소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모이는 사이트에 함께 시골에 내려가 집을 짓고 같이 살 가정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지원 마감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20 가정 남짓 지원할 것이라는 예견과는 달리 전국에서 27 가정이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들은 결과에 고무된 나머지 세 가정을 채우면 5억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몇 명의 친구들을 더 모으기로 하였다. 그렇게 31 가정이 금산으로 가는데 참여하였다. 우선 마을을 이뤄 이주하는 데 동의한 가정을 중심으로 3,000만원을 받아 9억 3,000만원을 조성하고 금산의 야산과 그 밑 밭을 샀다. 전체 3만 평 정도 되었다. 이제 마을을 이루는 일 중에 집 짓는 일은 각자 짓기로 하였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센터와 각 종 토목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누군가 교직을 그만두고 마을을 이루는 추진위원장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그가 그런 제안을 접했을 때 그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미 그는 안락했던 대도시에서의 근무를 포기하고 충청남도 홍성에 전입하여 금산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이 그의 주된 업무 공간이었는데, 소나무로 가득 찬 야산과 텅 빈 밭을 바라보며 그가 느낀 첫 번 째 감정은 ‘막연함’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끝을 맺을 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 그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일을 이루고 싶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여 주소서.’ 이런 기도를 한지 한 달, 두 달, 세 달 그러나 주님은 침묵하셨다. 그리고 약속된 일정대로 농림부의 택지 조성사업이 진행되었고 산의 나무는 가식을 위해 옮겨졌으며, 마을 진입을 위한 큰 길을 내기 위해 산 앞 밭들은 흙으로 채워졌다. 31가구의 집을 짓기 위한 길이 나고, 길 옆으로 31 개의 집터가 만들어졌다. 택지가 조성되고 그가 기도를 시작한지 얼마가 지났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던 선배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교직을 그만두고 그곳에서 교회를 섬기고 계셨다. 그가 이미 얻은 미국 시민권을 반환하고 귀국하여 그 먼 시골로 오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오랜 시간 그의 가슴에서 덜어내지 못했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교육공동체에 대한 꿈이었다. 그들은 그 막연했던 마을을 이루는 일의 서막을 열었다. 그와 함께 여섯 집이 선발대로 집을 짓기로 하였다. 차일 피일 금산으로 내려올 일을 미루고 있던 참가자들에게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어 그해에 금산으로 전출을 신청하거나 마을과 함께 별무리학교 교사로 지원한 자들은 사직을 준비하였다.  

 

 

헌신은 남편이, 고생은 아내와 자녀가 

 

자신이 거주하던 곳을 떠나 주거지를 옮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31 가정의 사정은 모두 달랐다. 대부분 교직에 있던 사람들이어서 특히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자녀를 둔 가정들의 고민이 그러했다. 나름 교육적 조건이 잘 갖춰진 곳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기를 원하는 가정들이 많았는데 금산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마을 안에 세워질 별무리학교 교사로 지원하여 공립학교를 그만 두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공립학교 안에 있다가 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퇴직을 한 그는 그곳에서의 안정성과 안락함이 생각 속에서 정리하는 것보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차이가 있음을 퇴직을 하고 절절히 느꼈다. 항상 그러하듯이 남편의 꿈을 지지하기 위해 아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그저 시골 어디로 거처를 옮기는 것만이 아니었다. 금산이 대전 인근이어서 충청남도에서도 선호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충청남도에 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충청남도에서 금산으로 임지를 잡는 것은 산 너머 산이었다. 어떤 가정은 홍성을 거쳐, 다른 가정은 논산이나 계룡을 거쳐, 심하게는 당진을 거쳐 3년에서 5년을 기다리며 이동 점수를 쌓아 입성할 수 있는 곳이 금산이었다. 일단 별무리마을에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들은 하루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길을 구불구불 산 길로 출 퇴근을 하였다. 두 가정이 교통 사고로 차를 폐차할 만큼 큰 사고에서부터 자잘한 사고를 감안하면 그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려움이었다. 특히 각 가정의 아내들의 고초가 컸다. 달라진 근무 환경을 극복해야 했고, 소규모 학급을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교사의 위치도 대도시에서의 그것과는 달랐다. 시골 마을의 어떤 학교는 옛 동헌 자리를 얻어 지어진 학교였다. 옛날 사또가 금방이라도 호령할 것 같은 부조나 석조 조형물들이 그대로 운동장과 학교 곳곳에 있는 학교였다. 그곳은 학교가 아니라 아직도 그 마을의 정신을 잇고 있는 동헌이었다. 그곳에서 충청도의 첫 근무를 시작한 그녀는 학교의 비중과 지역에서의 역할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정방문은 기본이고 각 가정의 상황을 수시로 살펴야 했다. 운동회나 각 종 행사는 학부모님들의 축제요 100년 넘은 동문들의 회합의 장소였다. 임지를 옮겨 찾아간 각 학교들에서 헌신과 수고는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함께 이주한 자녀들은 학원 하나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파부침주 

 

19년 차 공립학교를 그만둔 별무리학교 선생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1년만 더 근무하고 오셨으면 연금을 받을 수 있으셨는데 좀 아쉽지 않으세요?” 그런 질문을 들으며 그는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일정한 금액이 매달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알고서 놀랐고 그 질문을 하는 분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놀랐다. 공립학교를 그만 두는 그의 입장에서는 그간 자신을 위해 매달 일정한 보수를 주고 사회적인 안정성을 제공한 학교가 너무 고마웠고 학교를 그만 둔 이후까지 국가의 부담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롭게 시작하는 대안학교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사소할 수 있지만 다른 경제적 지원을 일정한 시점부터 받을 수 있고 그게 죽을 때까지라면 그는 별무리학교에 전부를 들여 헌신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별무리마을로 거처를 옮겨 공동체를 이루겠다고 결심한 모든 참여자가 그러했다. 그것은 아마도 명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곳 별무리마을을 통해 교육적, 공동체적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싶은 그분의 섭리가 깃들여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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