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학 단상_밴쿠버 기독교세계관대학원장 양승훈

관리자 | 2011.11.28 14:24 | 조회 6956
 

기독교대학 단상

-Trinity Western 대학에서의 12년을 회고하며


양승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필자가 한국 대학을 떠난 것이 1997년 11월이기 때문에 그 사이 한국 대학들도 많이 변했고, 캐나다에서도 기독교대학의 최고 책임자가 아닌, 신학대학원의 프로그램 책임자(학과장 정도)라는 중간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북미주 대학을 깊이 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30여년 간 기독교 고등교육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국내외 대학에서 일을 하면서 필자는 북미주 대학들이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한국 교수들이 훨씬 더 많이 일을 하는 듯 한데 어떻게 생산성은 북미주 대학들이 월등한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살아왔다. 아래에서는 필자가 여러 해 동안 캐나다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피부로 느낀 이곳 대학들의 강점들, 특히 대학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의 자세를 중심으로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I.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


■ 지난 12년간 TWU에 근무하면서 필자의 눈에 가장 인상적으로 비쳤던 점은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첫 번째 모습은 지도자들의 섬기는 태도였다. 필자가 TWU에 근무한 첫 7년은 Neil Snider 박사가 이끌었고, 그 후에는 Jonathan Raymond 박사가 이끌고 있다. 구세군 출신의 Raymond 총장은 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하는데 학자로서 뿐 아니라 대학 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분이었다. 그래서 TWU가 속한 EFCC(Evangelical Free Church of Canada) 교단 출신도 아닌데 본교의 총장으로 모셔온 것이다.


Raymond 총장의 리더십은 조직원들과의 탁월한 소통력이었다. 비서실을 통해 보내오는 통상적이고 사무적인 공문이 아니라 온 조직원들에게 감사하고 격려하는 총장의 개인 편지가 직접 매주 500여 교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된다. 내용은 신앙으로 이 학교를 이끌고 가기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는 교직원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나누어야 할 기도제목,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매주 보내오는 총장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정말 TWU가 세속의 물결 속에서 꿋꿋이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수고하는 대학 리더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총장에게 헌신적으로 학교를 섬겨주어서 감사하다는 간단한 답 메일을 보낸다.


■ 이러한 섬김의 모습은 비단 총장만의 모습이 아니다. 본부의 여러 지도자들이나 신대원이나 대학원 원장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섬기는 지도자들에게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응답은 존경의 마음이다. 처음 이곳 대학에 근무하기 시작할 때에 필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강조되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학에서 권위에 대한 순종이 유난하다는 점이 언뜻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캐나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만 충실할 뿐 다른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을 존경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나면 지날수록 저들은 우리들보다 지도자들을 훨씬 더 많이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존경은 나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섬김, 즉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사람에 대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존경이었다.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고, 그런 사람들을 서로서로 존경하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다.


지난 12년동안 TWU 캠퍼스에 지내면서 필자는 단 한 번도 지도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들은 지도자들 앞에서 외적으로 굽실거리지는 않지만 존경할만한 사람들에 대해 마음 속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곳에 살다보니 저들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들의 이름을 건물이나 거리 등에 붙이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겸손하게 섬기는 지도자, 그리고 그 지도자를 존경하는 마음. 이것이 기독교 대학 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가장 드러나는 곳은 교수회의이다. 필자가 이곳 대학에 근무하면서 정말 부러워하는 것은 이곳 교수들의 회의하는 모습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전체 교수회의만도 100회 이상, 소위원회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회의를 했지만 한국에서의 교수회의와는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다. 필자는 한국 대학에 근무하는 동안 교수회의 중에 얼굴을 붉히거나 큰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문을 박차고 나가는 일을 심심찮게 경험했다. 그런데 이곳 교수회의에서는 그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교수들끼리 항상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의견이 다를 때도 있고, 예민한 문제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더 톤이 낮아진다.


기독교세계관 대학원 프로그램은 VIEW와 ACTS가 적절한 계약을 맺고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새로운 계약을 위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결국 한쪽이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가게 되면 다른 한쪽은 그 만큼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산 협상을 할 때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협상을 여러 차례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가 상충되는 사안이라도, 그리고 협상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해 있을지라도 협상하는 양측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요, 하나의 큰 목적을 위해 이곳에 모여 있음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지금도 필자가 소속된 문학석사 과정 소위원회에서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메노나이트 신학교에서 강하게 반대를 해서 난항을 겪고 있다. 필자는 소위원회 위원장과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날마다 전화로, 혹은 이 메일로 전략을 짜고 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위원회에서 들어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마켓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프로그램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저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묘안은 없는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 사람을 존중하는 이곳 대학의 분위기는 학교 내외의 기관들이 서로 협조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기관이나 조직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각 부처마다 부처 이기주의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필자는 이곳에서 그런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학교를 개인이나 단체의 소유라고 생각하기보다 한 나라 혹은 지역 사회의 공유자산이라고 하는 정신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학부보다도 다섯 개 교단들이 운영하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운영하는 ACTS 신학대학원은 기관들 사이의 협력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ACTS에서는 여러 교단들이 모여서 한 신학교를 운영하다보니 당연히 교단이나 신학교 간에 이해가 상충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밀고 밀리면서 조금씩 물러서고 양보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결국에는 거의 대부분의 의제들이 만장일치로 마무리 된다. 서로 믿고 존중하는 모습 때문에 이런 합의가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비단 교내 기관들 사이에서만 국한된 모습이 아니다. 학교의 사명선언에 위배되지 않고 모두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누가 제안하더라도 진지하게 검토한다. VIEW가 여러 해 전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 밴쿠버에서 기독교 역사상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들의 열린 자세,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와도 함께 협력한다는 정신 때문이었다. 이것 역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 기초한 태도이다.


II. 자기 업무에 성실한 공동체


■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자기 일에 매우 성실하다는 점이었다. 지도자들은 물론,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정원사들, 교수들이나 행정직원들 모두 자기 일에 성실하다. 업무 시간 중에 딴 전을 피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역시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TWU 교수들의 성실한 강의 준비였다. 아무리 타고난 은사가 있는 사람이라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고는 잘 가르칠 수 없다. 그래서 TWU에서는 끊임없이 프로디데이(Professional Development Day)를 갖는다. 이것은 물론 TWU만의 제도는 아니다. 북미주의 모든 초등학교나 중등학교가 갖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아무리 자신의 해당 분야에서 박사를 받았더라도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또 다른 전공이다. 자기 분야의 전공 지식에 대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판단하겠지만 그 지식을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는 또 다른 전공이기 때문이다. 교수법을 전공하는 전문가들이 교수들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VIEW에서 가르치는 10여명의 캐나다 교수들을 보면서 필자가 정말 놀란 것은 저들의 철저한 강의 준비이다. 이것은 필자가 한국 대학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교수가 강의 시간 전에 미리 강의실에 도착해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이나, 강의 노트를 잘 준비하거나 파워포인트를 잘 준하는 것 등 외형적인 것에 더하여 강의 내용이 정말 돈 주고 사고 싶을 만큼 “영양가”가 꽉 차 있다. 치밀한 시간 계획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강의 시간에 강의 내용과 무관한 얘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탁월한 강의의 출발은 잘 만들어진 강의계획서인데 VIEW에서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들이 처음 강의할 때 부딪치는 문제는 바로 강의계획서이다. Adjunct Faculty로 임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의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 교수들이 처음 강의계획서를 위원회(Syllabus Committee)에 제출하면 “피투성이”가 된다. 강의계획서가 엉성해서 새빨갛게 고친다는 말이다. 과제의 분량이 3학점 대학원 강의로 적절한지, 교과서가 최근 연구를 반영하는 학문적인 책인지, 읽는 책들이 신학적으로 건전한지, 숙제나 시험이 단순 암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책을 읽고 단순히 요약, 정리하라는 숙제는 없는지...


이런 부단한 노력으로 인해 TWU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대학 대학평가 기관인 The Globe and Mail and Maclean’s로부터 지난 4년 연속 전체 캐나다 100여개 대학들 중 Educational Quality 1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에 치중한다고 해서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TWU는 모든 연구 분야에서 1등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몇 분야는 캐나다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TWU는 캐나다 정부가 최고의 대학을 선발하여 지원하는 Canada Research Chairs를 세 개나 갖고 있다: (1) Developmental Genetics and Disease; (2) Interpretation, Religion, and Culture; (3) Dead Sea Scrolls Studies. 많은 교수들이 교육에 목을 매고 있지만 일부 연구에 은사가 있는 교수들은 그 은사를 따라 학교를,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 또한 자기 업무에 충실한 모습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학교 행사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필자가 한국에서 근무했던 대학은 물론 대부분의 한국 대학의 교수들은 학교 전체 행사에 잘 참여하지 않았다. 총장 선거와 같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다. 그런데 이곳 TWU에서는 학교의 중요한 행사에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참여한다. 9월 초순에 모이는 개강예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정기적으로 모이는 월례 전체 교수회의 등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교수들이 참석한다. 특히 4월 졸업식에는 모든 교수들이 학위복을 차려입고 참여한다. 물론 단상에 올라가는 리더들(platform party)은 일부이고 다른 대부분의 교수들은 졸업식장 앞쪽 좌우의 지정된 좌석에 앉는다. 보직 교수들 외에는 거의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는 한국 대학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매년 8월 하순에 2박 3일로 진행하는 교수 수련회도 모든 교수들이 참여하는 연례행사다. 국경 너머 미국에 있는 좋은 수양관을 빌려서 진행하는 교수 수련회에서는 예배, 친목, 신임교수 소개, 중요한 프로젝트나 중요한 업적을 발표한 교수들의 연구 소개 등 다양한 순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프로그램은 학교가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이념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은 근래에 발표된 기독교 대학의 정체성이나 이념, 학문과 신앙 등에 관한 중요한 서적을 한 권 선정하여 장별로 그룹을 만들어 토의하고 이를 전체 토의시간에 발표,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한다. 물론 이 때 사용하는 책은 학교에서 미리 몇 달 전에 일괄 구입하여 전 교수들에게 배포하고 읽어올 것을 요구한다.


학교의 중요한 학술행사에도 교수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다. 비록 자기 분야의 학자가 아니라도 중요한 학자들이 방문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일전에 영국에서 N.T. Wright라는 신학자가 학교를 방문했는데 필자는 강연장엘 갔다가 깜짝 놀랐다. 거의 모든 교수들과 많은 대학원생들, 심지어 상당수의 직원들까지 참석한 것이 아닌가! 꽤 큰 강당에 앉을 좌석을 찾지 못해서 시간 전에 간 필자도 한동안 헤맸다. 두어 주 전에 참석하겠다고 예약했는데...


■ 자기 업무에 대한 성실함은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 대한 섬김에서도 나타난다. 이곳 교직원들은 대학의 일차적인 서비스 대상인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요구에 매우 민감하다.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지금까지 그런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지만) 일단 학교 지도자나 교직원들은 이들의 요구를 경청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저들의 요구를 수용한다.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는 엄청나게 비싸다. 이 비싼 서비스 패키지를 팔려면 그만큼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경쟁 대학들에 비해 자기 대학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가격 대비 서비스의 질이 탁월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교수들은 이런 치열한 서비스 경쟁의 한 가운데 바로 자신들이 있음을 절대로 잊지 않고 있다.


모든 서비스 업종이 그러하듯이 서비스의 질은 결국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보험 상품이나 경영 컨설팅 등에 비해 기독교 대학에서는 지식과 더불어 인격과 영성이 전달되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 업종과는 좀 다른 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는 측면에서 기독교 대학도 역시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비스 대상은 일차적으로 학생이고, 다음으로는 학생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학부모들, 그리고 동문들, 지역 사회, 나아가 나라와 열방이다.


이들은 섬기는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외부인들에게 강의도 개방한다. 물론 사전에 교수의 양해를 구해야 하고, 교수들은 너무 학생들이 많아서 복잡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허용한다. 도리어 우리가 이렇게 잘 가르치고 있으니 와서 보고 자녀들,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학교를 추천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비단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서비스가 아니다.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 교회와 목회자들,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서비스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중무휴로 다양한 공개강좌나 유료강좌들을 개발하여 지역 교회들을 초청한다. 대학에서 훌륭한 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을 모시고 강연이나 세미나를 한다. 물론 모든 행사가 무료인 것은 아니지만 유료라고 해도 이것은 지역 교회나 사회를 위한 큰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III. 진정한 기독교 대학


지금까지 기독교 대학으로서 TWU에서 볼 수 있었던 몇 가지 특성을 소개했다. 물론 자세히 기술하자면 훨씬 더 많은 특성들이 있을 것이지만 위에서는 필자가 TWU에서 근무하면서 피부로 느낀 가장 인상적인 특징들만을 소개하였다. 어떻게 보면 몇 가지 좋은 점들만을 소개했다고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기독교 대학의 외적인 좋은 점들만을 소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기독교 대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히 TWU도 완전하지 않다.


대부분의 소규모 기독교 대학들이 그러하듯 TWU도 재정적인 압박 때문에 총장을 비롯한 학교 지도자들은 정부나 여러 재단으로부터, 혹은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내핍 경영을 한다. 아무리 기독교 대학이라고 해도 돈이 없으면 좋은 교수를 스카우트 할 수도,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교수나 교육환경,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좋은 학생들이 지원하지도 않는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소규모 대학들이 탁월한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을 키울 것인가? 이것은 모든 기독교 대학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이곳 대학에서도 때로 지도자들이 실수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사고를 치기도 한다. 지도자들도, 교직원들도, 학생들도, 시스템도 완전하지 않다. 이곳 대학에도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학교에서는 재빨리 이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서 한 동안 조사,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당사자들은 이에 승복한다. 위원회에서 만든 연구 결과들은 차근차근 학교 내규집에 포함시켜서 다시는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는다.


타락한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자유는 없으며, 타락한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온전하지도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기독교 대학에서는 더 나은 기독교 대학을 만들기 위해 총장으로부터 모든 구성원들이 한 마음으로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나은 학문과 교육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곳.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 대학의 모습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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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원고는 양승훈 교수님이 메일로 정기적으로 보내주시는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별무리 학교 구성원들도 꼭 배울 점이라 생각되어 글을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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