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대안학교 별무리학교 이야기 5 - 피아노 소리 들리는 도서관

관리자 | 2014.04.07 22:05 | 조회 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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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도서관에선 가끔씩 손 때 묻은 중고 피아노의 연주 소리가 들린다. 쇼팽의 녹턴 20번 c#단조,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 1악장 알레그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2악장 Adagio un poco moto,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 소리가...

“도서관에 무슨 피아노 소리?” 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사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보통 도서관이 아니다. 
     
작년의 일이다. 이름만 얘기해도 ‘아! 그분!’하며 알 수 있는 아동문학 작가님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셨다. 학교에 오신 작가님은 하루 종일 서가의 책들을 밖으로 내다 버리셨다. 해묵은 맞춤법으로 기록된 책부터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한 책들을 모두 골라 내셨다. 책을 수거하러 오신 아랫마을 아저씨는 트럭 가득 채워진 책들을 보고 연신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우리 학교 도서관 책장엔 새로운 책들이 분류표가 붙여져 한 권 한 권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일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막연한 고마움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 작가님이 일주일간 묵묵히 그 일을 마치고 돌아가신 후, 난 그 일을 추진했던 동료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 작가님이 우리 학교 도서관에 놓을 책을 사기 위해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피아노를 파셨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있다. 피아노는 아내의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이다. 피아노를 사러 중고 악기점을 찾아갔던 때가 기억난다. 아담하게 제작된 그 당대의 피아노는 음이 너무 가벼웠기에 우린 의도적으로 중고 피아노를 사고 싶었다. 현이 길면서도 터치감이 좋은 악기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다 지금은 아내의 소중한 보물이된 그 피아노를 만났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쉽게 사거나 없앨 수 없는 그런 피아노를 팔다니... 그 피아노를 팔 때,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을 지가 느껴졌다. 
     
한 번은 작가님이 동료들과 함께 우리 학교를 방문하신 적이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온 그 분은 이번에도 예전과 같이 학생들이 읽기에 알맞은 양서를 선별하여 정리하시고 구분하는 일을 하셨다. 그 때 동행을 하신 일행 중의 한 분은, ‘책 먹는 오약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유명한 프란치스카 비어만이 쓴, ‘책 먹는 여우’라는 책의 제목에서 착안하여 지어진 별명이라고 했다. 소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M 방송국에서도 일을 하셨고 지금은 약사로 일하시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 분이셨다. 
그런 만남을 빌미로 ‘책 먹는 오약사’를 우리는 작년 2학기에 개최한 독서 캠프의 주제 강사로 모셨다. 그분은 강의에서, 책을 통해 자신이 만난 좋은 친구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하면서 독서의 필요성을 얘기해 주셨다. 학교에 책만 달랑 건네주는 평범한 기부자와는 달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고 책 속의 인물과는 어떻게 친구를 삼는 지를 열과 성을 다해 말씀해 주셨다. 
     
이렇듯 다양한 이 들의 정성과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도서관은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그 곳에서 친구를 만난다. 동갑내기부터 나이 많은 친구까지 다양하게 만난다. 나 또한 별무리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도서관에는 어른이 읽기에도 너무 감동적인 동화책, 소설책부터 교양서적, 전문 서적으로 고루 채워져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사실 그리 활동적인 아이들은 아니다. 달리 말해, 몸보다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지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며 만족해하는 아이도 있고, 마음의 응어리를 삭이며 울고 있는 아이도 있다. 식욕이 왕성할 나이에 급식시간을 잊고 책을 읽다가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와 조리장님께 혼이 날 정도로 이 아이들은 책에 빠져있다.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친구가 없고 책을 살 돈이 없어 항상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궁금증을 해결했었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 이후에도 그 작가님은 수 백 권의 책을 더 구해서 우리 학교 도서관에 기증해 주셨다. 피아노와 맞바꾼 사랑과 정성이 담긴 책들로 가득한 별무리의 도서관. 난 이 도서관을 드나들며 가끔씩 환청을 듣는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피아노의 선율이 초 봄 별무리의 선잠을 깨운다.
     
교육은 이렇게 세워지는 것이다. 작은 정성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여 아이들 마음속에 한 방울 씩 맺히는 것이다. 중고 피아노의 선율이 아이들의 마음의 보석으로 맺혀 장차 아이들이 중요한 고비를 넘길 때 마다, 다른 이들이 찾지 못하는 지혜를 마음속에서 캐낼 줄 아는 진정한  부자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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