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칼럼) 꿈꾸는 대안학교 별무리 이야기3

관리자 | 2014.01.15 15:24 | 조회 5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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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는 수시로 나를 따라다니며 어떻게 하면 영재수업을 받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영재학급 시간에 수학, 과학수업을 아무리 들어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영재성 판별 시험에서도 우수한 점수를 받았고, 평소 선생님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운 아이가 수업을 힘들어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아 영재학급 자퇴원을 선뜻 내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진서가 벼르고 벼른 날인 것 같았다. 다부지게 나를 바라보고서는 “선생님, 부모님과 얘기 다 끝냈습니다! 저 이번엔 확실하게 영재학급을 나가고 싶습니다!”라며 내게는 얘기할 틈도 주지 않고 밀어 붙였다.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워낙 의지가 강하게 느껴져 얼떨결에 자퇴원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우리 학교 영재학급에서 공부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오랜 기간 동안 영재학급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지도했던 나로서는 진서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1학기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아이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 분은 뮤지컬 대본을 쓰는 극작가였는데, 지인의 소개로 1주일 간 우리 별무리 마을에 머물며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쳐 주셨다.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 일부가 가을 축제 때 우리 학교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표현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은 교직원 회의를 통해 받아들여져 정식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되었다. 7~8명의 학생들이 대본을 쓰고 그들을 중심으로 배우, 세션, 의상, 분장, 소품, 무대, 조명, 안무, 연출, 작곡 등의 영역으로 역할 분담이 맡겨졌다. 총 80여 명의 학생들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자원해 주었다. 여름 방학 동안, 대본을 다듬고 별무리 마을에 거주하시는 선생님과 담당자는 아이들의 가사에 곡을 붙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자 우리는 저녁 활동 시간을 뮤지컬 준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바로 1학기 때 영재교육을 스스로 포기했던 진서의 역할을 말이다! 대본을 쓴 팀이 총진행을 하기로 했는데 그 중심에 진서가 있었다. 진서가 맡은 역할은, 당시 뮤지컬의 감독을 맡았던 나를 도와 총연출을 하는 것이었다. 배우 27명 모두가 한 무대에서 안무를 하며 노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수차례의 연습과 학생 개개인의 동선을 익히는 과정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동선을 순식간에 그려 냈고, 연습에 지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독려하여 연습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공연 당일, 800석의 대 공연장 무대에서 진서의 역할은 빛이 났다. 무대 좌우를 다니며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제 시간에 배우가 정확한 자리에 올라가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솔로를 맡아서 목소리와 연기를 뽐내는 아이 뒤에 묵묵히 서서 친구가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 세션이 제 시간에 연주를 하도록 돕는 일 등, 어른들도 해낼 수 없는 일을 진서는 해냈다. 수많은 관객들이 아이들의 연기에 열광하고, 조명을 받은 아이가 커튼콜을 받으며 박수를 받을 때 그것을 묵묵히 지켜볼 줄 아는 아이. 요즘 어떤 중학생에게 이런 면이 있단 말인가! 난 진서의 이런 면을 보면서 1학기 때 막연하게 흔들렸던 내 확신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이들을 섬기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진서는 ‘진정한 영재’다! 
     
‘어떤 아이가 영재일까?’ 영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가 어떤 특성의 학생을 ‘영재’라고 정의하느냐는 것이다. 영재교육 초기(2002년 영재교육법 시행령개시 당시)엔 논리적 사고력이 뛰어난 학생을 영재교육 대상자로 생각하고 수학적, 과학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영재교육대상자로 선발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영재교육대상자를 선발했는데 아이들에게 향상이 없었다. 알고 보니 각종 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논리적 문제해결력을 연습하고 영재성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담임교사나 영재교육 전문가의 관찰추천을 통해 영재성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 개설된 영재교육 기관들을 보면 예체능을 제외하면 수학, 과학, 정보, 발명 정도의 영역을 다룰 뿐 이외의 학문 분야 전반에 걸친 영재교육은 다루지 못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의 아이들의 모습은 수학, 과학 보다는 춤, 노래, 그림, 이야기, 만들기 등 그 보다 훨씬 많은 영역의 탁월함을 갖춘 아이들이 많다. 진서처럼 수학, 과학엔 별 관심이 없지만 뮤지컬 전반에 관해 이해력이 좋고, 다른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으며, 자신을 낮춰 다른 사람들을 돋보일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어찌 평범한 일이란 말인가!
     
아이들은 모두 영재다! ‘영재’라는 단어 자체가 수동적이다. 능동적이지 않다. 한 생명 한 생명에게 독특하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영재성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향하는 모든 학교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넓게 펼쳐야한다. 수학, 과학 분야 뿐 아니라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의 영역까지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열어주어야 한다. 결국 좋은 학교는, 배우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잠재적 가능성을 감각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학교가 진정으로 좋은 학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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