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대안학교 별무리학교 이야기 : 얘들아~ 시 읽자 (박한배)

관리자 | 2014.07.01 11:39 | 조회 5908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홈페이지에 별무리학교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별무리학교 시 읽는 모임 이야기가 실렸네요^^
많은 격려부탁드립니다. 

작은 시작이지만 함께 하는 윤지원학생과 그 모임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별무리 학생들을 축복합니다.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07_2&wr_id=100092

 
나는 키팅 선생님을 꿈꿨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등장하는 키팅처럼 아이들과 시를 읽는 비밀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시인의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시를 읽고 쓰는 삶을 살아가는 제자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 별무리학교 선생으로 온 뒤 그 꿈은 슬그머니 바쁜 일상 속에 숨어버렸다. 
 
그런데 그 꿈은 오늘 꿈틀꿈틀 살아서 내 앞에 와 있다. 언제부터인가 별무리 언덕에 바람 부는 날, 우리는 시를 읽고 있다. 비 오는 날, 햇살 눈부신 날, 친구 없이 외로운 날에도 우리는 시를 읽고 있다. 별무리학교에서는 점심을 먹고 12시 30분, 학교 뒤 언덕 위에 있는 정자에 오면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다. 10대의 눈부심이 마음을 흔들 때도, 마음이 바위같이 무거워지는 날에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그곳에 가면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다.
 
한 달여 전부터 별무리학교에 점심시간 시를 읽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나른한 식후 할 일 없는 이들, 심심해서 몸부림쳐질 그때 시처럼 순수하고 빈 가슴을 지닌 이들이 모여 시를 읽는다. 시처럼 눈부신 생명들이 모여 시를 읽는다. 어떤 시집도 괜찮다. 동시집도, 시 모음집도, 어려운 해체시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집어 읽는다. 학교에서 청소하시는 할아버지 박집사님도, 친구와 손잡고 산책하던 짝꿍도 시집이 손에 들려지면 앉아있는 순서대로 한 편의 시를 골라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면 시원한 바람결을 따라, 지저귀는 새 소리를 따라 시어가 우리의 귓가에 내려앉는다. 그곳 그때에 모인 우리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시인의 가슴을 듣는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타고르의 목소리로 신께 기도를 올렸고, 포페를 따라 “단 한 순간만이라도”의 사랑을 배웠다. 조르주 상드에게서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의 의미를 들었고, 사무엘 울만에게서 “청춘”의 의미를 들었다. 체 게바라가 15세 때 던진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우리들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함께 읽었고 함께 들었다. 그리고 가슴에, 배에, 손에, 다리에 새기고 또 새겼다. 
 
“저의 20대에 함께 했던 시들입니다.” 딸 아이를 위해 하루 길을 달려온 한 어머니께서 내게 시처럼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내게 시집이 배달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시집을 들고 내 앞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함박 미소를 머금은 꽃 한 송이가 서 있었다. 그래서 별무리학교 시 읽는 모임은 시작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딸에게 시집을 선물해 주는 어머니가 있어. 아직 눈물 날 정도로 선생 노릇할 만하고 살아갈 맛이 난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내 생명의 호흡인 시간을 주기로 했다. 아니 그 아이와 그 어머니의 자양분을 함께 먹고 자라는 10대가 다시 되어보기로 했다. 
 
 오늘도 시를 향해 언덕을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 친구를 기다리듯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여러 편의 시(詩)들인 제자들을 읽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시를 읽는 입으로 욕을 할 수 있을까? 시집을 든 손으로 타인을 때릴 수 있을까? 시를 쓰는 가슴으로 꽃을 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도 아이들과 시집을 무조건 집어 들고 시를 읽는다. 20억 이상의 굶주린 이들이 공존하는 슬픈 지구에서 잉여의 인생을 살아가는 슬픔, 그리고 때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 대해 느끼는 모욕감을 가슴 한 켠에 안고 이곳 별무리 바람 부는 언덕에서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시를 다시 읽는다.
 
 
<나는 시가 좋다>
 
마음의 생체기에 홀로 피는 꽃
시는 벙어리 가슴에서 태어나는 이슬
그래서 나는 시가 좋다.
 
시는 슬픔 그대로 아픔 그대로 흐르는
깊은 산 골 고요한 눈물
비, 바람 속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 
 
그래서 나는 시가 좋다. 
 
                                    - 생풍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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